[현미경] 페퍼저축은행, 질주 급제동...작년 경영성과 '최하위'
-7대 대형저축은행 중 페퍼의 적자와 예금-대출-자산 축소폭 가장 커...연체율 등 자산건전성도 가장 나빠져 -영업적자와 당기순손실은 79개 전 저축은행 중 최대...2015년 이후 8년만에 첫 적자 -예금 감소폭은 대형 저축은행 중 가장 커 -소상공인대출 부실 등에 따른 충당금 적립 부담에 이자비용 급증, 이자수익 감소 탓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자산 규모 3조원 이상 국내 7개 대형 저축은행들 중 페퍼저축은행이 지난해 적자 규모, 자산건전성, 예금-대출-자산 축소폭 등 모든 주요 경영지표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으로 나타났다.
페퍼저축은행은 호주 페퍼그룹을 거쳐 현재 다국적 대형 사모펀드인 KKR그룹이 최대주주인 회사로, 2013년 한국 진출 이후 고속성장만 거듭해온 저축은행이다.
그 공로로 한국계 미국이민 1.5세대인 장매튜하돈 대표이사는 첫 한국 진출 때부터 11년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8일 저축은행중앙회 공시포털에 따르면 페퍼저축은행은 지난해 1390억원의 영업적자와 107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대형 저축은행들은 물론 전국 79개 저축은행들 중에서 가장 큰 적자를 기록했다.
페퍼저축은행은 2022년에만 해도 635억원의 영업흑자와 51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각각 기록했던 곳이다. 작년 한해 동안 흑자 감소폭도 79개 저축은행들 중 가장 크다. 이 저축은행의 적자는 한국 진출 초반인 2015년 이후 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작년 대부분의 저축은행들은 조달금리 급등과 과다한 부동산금융 등에 따른 대규모 대손비용 등으로 적자로 전환하거나 흑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자산 3조원 이상 대형 저축은행 중에서도 페퍼 외에 애큐온과 다올저축은행이 작년 큰 적자를 기록했다.
애큐온은 22년 732억원 영업 흑자에서 23년 802억원 영업 적자, 다올도 같은 기간 883억원 영업 흑자에서 130억원 영업 적자로 적자 전환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보다는 적자폭 혹은 흑자 감소폭이 크지 않았다.
나머지 대형 저축은행들의 작년 영업손익을 보면 자산순위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은 22년 3562억원 영업 흑자에서 23년 1090억원 영업 흑자, 2위 OK저축은행은 같은 기간 2548억원에서 858억원, 3위 한국투자저축은행은 1039억원에서 65억원, 4위 웰컴저축은행은 1288억원에서 403억원으로 각각 영업 흑자폭이 줄었다. 그러나 적자는 모두 면했다.
페퍼저축은행이 다른 저축은행들에 비해 유독 이렇게 적자폭이 커진 데는 다른 저축은행들처럼 부실 급증 등에 대비, 대규모 대손충당금(1697억원)을 작년에 새로 쌓은 것이 흑자 급감의 큰 원인이 됐다.
하지만 다른 대형 저축은행들보다 더 많이 쌓거나 충당금이 더 급증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페퍼가 다른 저축은행들보다 유별나게 대규모 적자를 낸 결정적 원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다른 웬만한 저축은행들은 이자비용 증가폭이 이자수익 증가폭보다 크면서도 이자수익과 이자비용이 모두 늘어난데 비해, 페퍼는 이자비용은 급증하면서 이자수익은 22년보다 오히려 감소한 영향이 결정적 원인으로 보인다.
페퍼의 23년 대출금 이자수익은 4548억원으로 22년 5082억원보다 534억원(-10.5%) 줄었다. 반면 예금 가입자들에게 지급하는 이자비용은 같은 기간 1454억원에서 2260억원으로 806억원(+35,6%)이나 늘었다.
영업에 필요한 자금의 조달비용은 36%나 늘어난데 비해 이자수익은 10% 이상 줄었으니 다른 저축은행들봐 큰 폭의 적자가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은 작년에 대부분의 저축은행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예금과 대출을 동시에 줄이되 대출보다 예금 감소폭이 더 컸던 반면 페퍼나 애큐온 등 일부 저축은행들은 대출 감소폭이 훨씬 더 크고 이자를 못 받는 연체대출 등 부실대출도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페퍼저축은행의 총 대출 잔액은 22년 말 5.23조원에서 23년 말 3.36조원으로 1년 사이에 무려 35.7%나 줄었다. 반면 예금잔액은 같은 기간 5.55조원에서 4.17조원으로 24.8% 감소하는데 그쳤다.
업계 1위 SBI저축은행도 작년 예금 감소율이 7.44%인 반면 대출 감소율은 12.7%로, 대출감소율이 훨씬 더 컸다. 하지만 페퍼와 달리 적자가 나지 않은 것은 페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자를 제대로 못 받는 연체대출이나 고정이하대출 등 부실성 대출이 훨씬 더 적었기 때문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페퍼저축은행의 연체대출비율은 22년 말 4.12%에서 23년 말 9.39%로, 1년 사이에 두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페퍼의 고정이하대출비율도 4.71%에서 12.86%로 급등했다.
반면 같은 기간 SBI저축은행의 연체대출비율은 2.03%에서 4.91%, 고정이하대출비율은 2.65%에서 5.92%로 각각 증가하는데 그쳤다.
작년 SBI의 대손충당금 신규전입액(대손상각비)은 8141억원으로 22년 5862억원에 비해 38.8%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페퍼는 1230억원에서 1697억원으로 37.9% 늘었다.
페퍼가 연체채권이나 고정이하대출 등 이자를 제대로 못 받는 부실채권들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대손충당금을 SBI보다 상대적으로 덜 쌓은 것이다.
자산규모 3조원 이상 7개 국내 대형 저축은행들 중 작년 말 기준 전체 대출금 중 연체대출비율이나 고정이하대출비율 등 부실성 여신 비율이 페퍼저축은행 보다 높은 곳은 없다. 고정이하대출비율의 경우 페퍼 다음으로 높은 곳은 웰컴(7.77%), OK(7.56%), 애큐온(6.74%), 다올(6.20%), SBI(5.92%), 한국투자(5.91%)저축은행 등의 순이다.
페퍼저축은행과 한참 격차가 있다. 22년 말까지만 해도 OK와 웰컴의 고정이하대출비율은 페퍼보다 훨씬 높았다. 작년 한해 동안 페퍼저축은행의 부실이 얼마나 급증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페퍼저축은행은 작년 말 기준 부동산PF대출 연체율(13.24%)과 건설업 대출 연체율(15.52%)도 대형 저축은행들 중 1위다. 부동산업 대출 연체율(9.79%)만 웰컴(10.97%), 다올(9.90%)에 이어 3위다.
현재 페퍼 측은 ‘우리가 작년에 상대적으로 큰 적자가 났지만 이는 소상공인이나 영세민 등에 대한 대출에서 문제가 많이 생긴 때문이지 요즘 문제가 크게 되고 있는 부동산PF대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어 실물경기만 회복되면 회복속도가 훨씬 더 빠를 것’이라고 일부 언론에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총 대출 대비 부동산관련 여신 비중만 보면 이 설명이 사실처럼 보인다. 페퍼저축은행의 작년 말 기준 총 대출 잔액 3조6009억원 중 부동산PF대출과 건설업 및 부동산업 대출 등 부동산관련 여신총액은 7102억원으로 전체의 19.7% 정도다.
이는 SBI의 15.3%보다는 높지만 OK(28%), 한국투자(43%), 웰컴(31.6%), 다올(43%)저축은행 등보다는 많이 낮은 수치다.
하지만 비중이 낮더라도 그 내용이 문제다. 페퍼의 작년 말 부동산관련 대출금 7102억원 중 이자를 제대로 받고 있는 정상 여신은 3191억원으로 전 대출의 44.9%에 불과하고, 이자를 1~3개월 연체 중인 요주의여신이 3166억원에 달한다. 나머지 745억원은 이자가 3개월 이상 연체되거나 회수가 사실상 어려워진 고정이하 여신들이다.
특히 부동산PF대출 2387억원 중 정상여신은 945억원으로 39.5%에 불과하다. 부동산업체들에게 나간 2944억원 대출 중에서도 정상여신은 1188억원(40.3%)에 그친다.
반면 SBI의 부동산관련 대출 중 정상여신 비율은 70.8%, 한국투자저축은행은 77.5%에 각각 달한다.
정상여신비율이 페퍼보다 훨씬 낮은 OK(34.2%), 웰컴(21.4%)저축은행 등도 있지만 이들은 부실대출비율을 낮추기 위해 대손충당금 신규전입이나 대출채권 매각, 대출채권 상-제각 등의 조치들을 페퍼보다 훨씬 활발하게 많이 하고 있다.
페퍼는 자신들 주장처럼 소상공인-영세민 대출 부실이 상대적으로 많은데다 부동산금융 부실도 상대적으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이자를 제대로 못 받는 부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생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작년 여러 이유로 저축은행 예금 이탈이 많았던 가운데 대출에 이어 예금 감소폭도 대형 저축은행들 중 페퍼저축은행이 가장 컸다.
페퍼의 작년 예금 감소율은 24.8%였으며, 다음은 웰컴(-21.4%), 애큐온(-14.3%), 다올(-12%), 한국투자(-11.5%), SBI(-7.44%), OK(-3.16%)저축은행 등의 순이다.
대형 저축은행들 중에서도 특히 페퍼저축은행의 작년 예금과 대출 감소폭이 가장 컸던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예금금리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저축은행의 불안한 상황 등 때문에 빚어지는 정통적인 예금 이탈 외에도 지나치게 높은 조달금리 때문에 생기는 인위적인 예금 축소, 부실대출 축소를 위한 인위적인 대출 축소 등의 여러 복합요인들이 어우러져 생긴 때문으로 보인다”고만 말했다.
이처럼 대형 저축은행들 중에서 예금과 대출이 가장 큰 폭으로 줄면서 페퍼저축은행의 작년 자산 감소폭도 대형 저축은행들 중에서 가장 컸다.
페퍼저축은행의 총 자산은 22년 말 6.26조원에서 23년 말 4.72조원으로, 1년 사이에 24.6%나 줄었다. 4분의1에 가까운 감소폭이다. 그 다음 감소폭이 컸던 곳은 웰컴(-17.2%), 애큐온(-12.6%), 다올(-10.3%), SBI(-5.37%), 한국투자(-4.5%), OK(-0.64%)저축은행 등의 순이다.
페퍼는 22년 말까지만 해도 자산순위 5위 저축은행이었으나 애큐온에 밀려 작년 말 6위로 한 단계 떨어졌다. 몇 년전 한때 페퍼저축은행은 자산순위 3위까지 뛰어 오르기도 했던 곳이다.
현재 경기도 분당에 본사가 있는 페퍼저축은행은 2013년 호주 페퍼그룹이 경기도 소재 늘푸른저축은행을 인수, 페퍼저축은행으로 새로 출범시키면서 한국에 첫 진출했다. 같은 해 한울저축은행(호남솔로몬저축은행)도 흡수 합병했다.
이후 블랙스톤에 이어 운용자산 규모 전세계 2위 사모펀드인 KKR그룹이 페퍼그룹을 인수하면서 현재 실질적 주인은 KKR그룹이다. 페퍼그룹 자체가 영어로는 'Pepper'라고 표기하지만, 이 회사 장매튜하돈 대표이사에 따르면 페어플레이(Fairplay)로, 퍼펙트(Perfect)한 승리를 추구한다는 뜻에서 '페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 진출 이후 그동안 이 저축은행이 고속 성장한 배경에는 2013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 대표이사 자리를 지켜온 장매튜 대표의 공이 크다는 게 업계 안팎의 대체적인 목소리다. 올해 57세인 장 대표는 10세 무렵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1.5세대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199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프라이빗뱅킹, 신용카드 세일즈 등 컨슈머뱅킹 부문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한국으로 유턴한 건 2002년.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서 한국소매금융 대표를 역임한 그는 PB본부장, 지점총괄상무 등 리테일 분야에서 업계 대표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데이터분석을 활용한 직장인 신용대출 모델을 국내시장에 안착시키며 세일즈 능력을 인정받았다. 고신용자 위주의 제1금융권, 저신용자 대상의 저축은행이란 공식을 깨고 페퍼저축은행이 중금리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데도 장 대표의 이력이 한몫 했다.
하지만 작년 이같은 실적 추락으로 장 대표의 이력에 큰 금이 가고, 페퍼저축은행의 고속성장 가도에도 엄청난 브레이크가 걸렸다. ‘데이터분석’ 등으로 ‘첨단과학경영’에 일가견이 있다는 장 대표가 어떻게 이런 대규모 부실 징후를 사전에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대처도 제대로 못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장 대표의 11년 대표이사 장기 재임 가도에 문제나 위기가 생겼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회사 실적이 작년에 한창 급격히 추락하는 중인데도 주주들에게 중간배당 포함, 작년 배당으로 무려 710억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22년 주주 배당은 30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