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신세계건설, '600억 채무 인수'…재무 리셋에 휘청
- 그룹 수혈로 만든 현금, 대출 연대 보증으로 재무 부담 증가 - 분양 규제 강화·계약 조건 변경, 수분양자들과 소송전 - 높은 원가 부담과 공사 대금 미수로 어려움 가중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누적 적자와 미분양 등으로 자신은 물론 모기업 이마트에게까지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신세계건설에 이번에는 연대보증을 섰다가 채무를 대신 떠안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모두 중도금 대출 등을 통해 레지던스나 지식산업센터 등을 분양받은 사람들(수분양자)이 소송 등을 이유로 못갚겠다고 버티면서 중도금 채무를 대신 떠안는(채무인수) 사례들이다.
신세계건설은 ‘빌리브패러그라프’ 중도금대출의 원채무자(수분양자)가 채권자에게 부담하는 채무 중 원채무자와 대주간의 소송 등으로 미상환된 일부 채무에 대해 연대보증인 자격으로 571억원의 채무를 인수한다고 지난 27일 공시했다.
‘빌리브패러그라프’라는 사업장의 소재지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부산 해운대에서 분양한 고급 레지던스(생활형숙박시설)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지역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빌리브패러그라프는 지난 5월 구청의 사용승인(준공허가)을 받고 오픈 준비에 한창이다. 시공을 맡은 신세계건설은 지하 5층 지상 38층, 284세대 규모로 레지던스를 건립했다.
빌리브패러그라프는 2020년 레지던스 인기가 절정이었을 때 이뤄진 분양에서 평균 경쟁률 38.8대 1(최고 266대 1)을 기록하며 완판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 5월 정부의 건축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레지던스 규제가 강화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주거용으로 사용하려면 오피스텔로 용도 전환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건축법 위반으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사업자 측은 준공을 한 달가량 앞둔 지난 3월 위수탁업체와 맺은 계약내용 변경을 수분양자들에게 통보했다. 당초 계약서에는 레지던스를 숙박업으로 운영해 올린 매출의 50%를 수분양자들에게 지급한다고 기재돼 있었으나, 순수익의 70%로 계약 조건이 불리하게 변경됐다.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받은 대부분의 수분양자들은 애초 계약보다 수익 배분에서 불리한 조건을 강요받게 되자, 분양 당시 홍보문구에 '자산가들의 워너비 주거상품' 등이 담긴 자료를 증거로 내세우며 '사기 분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수분양자들의 위기감을 반영해 분양가의 10% 안팎의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가 붙은 매도 물량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과정에서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수분양자들이 중도금대출을 못갚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건설은 시공을 맡는 대가로 신세계건설의 브랜드명 ‘빌리브-’를 쓰게 해주고 중도금대출 등의 연대보증을 섰다가 유탄을 맞은 셈이다. 인수 채무 규모로 보아 다수 수분양자 건을 떠안은 것으로 추정된다.
신세계건설은 채무인수 결정 이후 미상환된 채무를 (대신) 상환할 예정이며, 대출약정 및 신탁계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분양대금 수금을 통해 상환금액을 회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연대보증을 섰기 때문에 먼저 미상환 중도 대출금을 대신 갚아 주고, 분양대금을 받아 이를 회수하겠다는 설명이다.
분양대금이 쉽게 회수된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소송사태까지 발생한 분양물건의 수분양자에게서 분양대금을 받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마피’ 물량들까지 쏟아지는 상황에서 해당 물건들을 제3자에게 다시 분양해 분양대금을 회수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끝내 회수하지 못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대구 등의 미분양 누적으로 적자가 이어져온 신세계건설의 재무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미 채무를 대신 상환했다면 분양대금 회수 때까지 신세계건설의 비용이나 손실을 더 확대시킬 것이다.
신세계건설은 지난달에도 경기도 구리 갈매지식산업센터 수분양자의 중도금대출 원리금 162억원을 대신 떠안았다(채무인수)고 공시한 적이 있다. 이 건 역시 수분양자와 중도금대출 대주간의 소송 등으로 수분양자가 못갚겠다고 한 것을 신세계건설이 연대보증인으로 대신 인수한 것이다.
이 두 건의 채무인수액 733억원은 작년 말 기준 신세계건설 자기자본 1199억원의 61%에 달하는 규모다.
신세계건설은 현재 ‘미분양 무덤’이라고까지 불리는 대구 부산 포항지역 등에서 2018년 이후 아파트 등의 수주를 크게 늘렸다가 연속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2021년까지는 그래도 384억원의 영업이익(연결기준)을 올렸으나 2022년 120억원 영업 손실을 본 이후 작년에는 영업적자 규모가 1878억원까지 확대됐다.
올 상반기까지 이런 분위기는 이어져 매출은 작년 상반기 7988억원에서 올 상반기 4248억원으로 크게 줄고,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431억원에서 643억원으로 더 늘어났다.
신세계건설의 적자 확대는 신세계건설 지분 70%를 갖고 있는 모기업 이마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마트가 작년 46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큰 이유들 중 하나가 신세계건설 적자확대였다. 올 상반기 이마트는 간신히 영업흑자로 돌아서긴 했으나 매출 14조원에 영업흑자 규모가 124억원에 불과한 것도 신세계건설 영향이 컸다.
영향이 신세계그룹 주력기업 이마트에게까지 확대되자 신세계그룹은 작년 말부터 신세계건설 살리기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신세계건설은 작년 말 보유현금이 720억원이나 되는 다른 계열사 영랑호리조트를 흡수 합병했고, 지난 1월에는 계열사 신세계아이앤씨와 금융권이 동원된 회사채 프로그램을 통해 2000억원을 지원받았다.
지난 6월에는 신세계건설 레저사업부문을 다른 계열사 조선호텔앤리조트로 매각해 약 1820억원을 확보했다. 매각된 신세계건설 레저부문은 경기도 여주 자유CC와 트리니티골프클럽, 하남·고양·안성 등 스타필드 3곳에 있는 아쿠아필드, 그리고 조경사업 등이다.
그룹의 지원으로 신세계건설이 이렇게 확보한 현금만도 4470억원에 달한다. 또 골프장 매각으로 유동성 확보 외에 회계상 부채로 인식되어 온 약 2700억원 규모의 골프장 회원 입회금 역시 소멸돼 부채 비율도 큰 폭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실제로 부채비율은 작년 말 952%에 달했던 것이 지난 6월 말에 벌써 161%로 뚝 떨어졌다. 골프장 회원금이 장부상으로 소멸되면 부채비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또 작년 말 1298억원이었던 신세계건설의 현금및현금성자산은 지난 6월 말 7955억원, 같은 기간 자본총계는 1199억원에서 7225억원으로 각각 크게 늘었다. 작년말 163억원 결손을 기록했던 이익잉여금도 지난 6월 말에는 264억원 흑자로 결손 상태를 벗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7월과 8월 대규모 채무인수 사례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다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번에는 미분양이 아니라 분양된 레지던스의 규제강화와 소송전 유탄을 맞았다.
IB업계는 신세계건설이 아직 보유현금이 많아 이 정도 채무 인수를 충분히 견딜 여력이 있어 보이지만 미분양과 영업상황이 아직 제대로 호전되지 않고 있는 것이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신세계건설의 반기보고서를 보면 올 상반기 매출액이 4248억원인데 비해 매출원가가 4382억원에 달해 원가부담이 아직도 너무 높다. 건자재비 같은 재료비와 인건비 등 너무 높아진 공사비용 부담이 내려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사매출을 크게 줄이고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을 크게 늘렸는데도 이렇다.
미청구공사가 작년 말 281억원에서 지난 6월 말 217억원으로 감소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진행 중인 각종 도급공사 관련 손실은 작년 상반기 84억원에서 올 상반기 170억원으로 더 늘었다. 같은 기간 대손상각비도 144억원에서 159억원으로 더 늘었다.
미분양 등으로 공사대금을 제대로 못받고 있는 사례가 아직도 많다는 증거로 보인다. 늘어난 각종 차입금 때문에 이자비용도 작년 상반기 66억원에서 올 상반기 205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IB업계 관계자는 "레지던스나 지식산업센터 사태가 잘 해결되지 않고, 신세계건설 사업장이 많은 지방 분양 경기가 호전되지 않는 한 신세계건설의 시련은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