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공시 회계정보에 의문 ..왠만한 우발채무 부실로 미리 반영하는 금융권과 대조적
-최근에는 책임분양 등 변형된 우발채무도 다수 등장
-건설사들, 지난해 PF보증 계속 증가...중견건설사 2~3곳, 자금대응능력 불안 상황

태영견설 본사 전경.[사진=태영건설]
태영견설 본사 전경.[사진=태영건설]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건설경기 침체 지속으로 부동산PF 우발채무의 부실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건설사들이 PF보증 규모에 비하면 최근까지 손실 및 충당부채를 인식한 사례가 아직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우발부채는 당장은 갚아야 할 부채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정식 부채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채무들을 말한다. 보통 자주 언급되는 연대보증이나 채무인수, 자금보충 같은 부동산PF보증과 책임준공, 책임착공, 책임분양 같은 기타 신용보강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건설경기 침체 지속과 특히 지방 미분양 확대 등으로 태영건설처럼 PF우발채무 등이 정식 부채로 바뀌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는데도 회계장부 상에 미리 손실 또는 비용처리를 꺼리는 건설사들이 대부분이어서 건설업계의 부실 규모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는 최근 내놓은 ‘본격화되는 PF 구조조정, PF우발채무 및 미분양 부실에 주목할 시점’ 보고서에서 작년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과 정부의 PF 구조조정 추진을 기점으로 PF보증 현장의 사업성 저하에 따른 부실 우려가 본격화되고 있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경우 PF사업의 부실화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감독원이 상향된 PF 충당금 적립기준을 제시하는 등 감독을 강화하자 상당수 우발채무들을 미리 장부상 손실로 인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사들의 경우는 금융권에 비해 이에 소극적이라고 한신평은 지적했다.

건설사들의 주요 PF우발채무 유형(한신평 정리)
건설사들의 주요 PF우발채무 유형(한신평 정리)

대표적 사례가 태영건설이다. 과중한 PF우발채무 및 유동성 부담으로 작년 말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은 워크아웃 직전인 작년 3분기까지도 PF우발채무와 관련한 손실 및 충당금을 회계장부에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워크아웃 신청 이후에야 2023년 연간 감사보고서에 PF사업장 예상손실을 중심으로 연결기준 1.6조원의 대규모 당기순손실을 한꺼번에 인식했다. 이 때문에 워크아웃 신청 직전까지만 해도 장부상으로는 꽤 흑자를 내던 회사가 갑자기 대규모 적자 전환과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됐다.

한신평은 PF우발채무와 미분양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건설사들의 공시된 회계정보에 관련 예상손실 및 충당금이 적시에 적정한 수준으로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PF 리스크 모니터링 건설사들이 신용평가 과정에서 제시하는 자료도 PF우발채무 관련 현장의 사업성을 검토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신평은 특히 최근에는 연대보증, 채무인수, 자금보충 등의 PF보증과 책임준공 이외에 변형된 방식의 PF우발채무들에 대해서도 보다 주의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양경기 침체로 인한 유동성및 PF우발채무 리스크
분양경기 침체로 인한 유동성및 PF우발채무 리스크

건설사의 책임준공 약정만으로는 금융권의 참여를 통한 예정사업장의 본PF 전환과 PF보증 리스크 해소가 어려워지면서 건설사들은 책임분양, 책임착공, 차주의 부도사유 발생방지 등 변형된 신용보강을 추가로 제공한 사례가 있으며, 본PF 전환 전에 브릿지론 상태에서 착공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해당 현장들의 경우 실제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거나 분양실적이 부진한 경우 회계상 PF보증 해소 여부와 관계없이 건설사로 대규모 손실이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신평은 지적했다.

한신평은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건설계약 관련 우발부채 주석공시 모범사례 시행 등을 통해 우발부채 공시를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분양, 책임착공 등 변형된 신용보강의 경우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 대부분 관련 내역이 공시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형별 PF보증의 사업성 리스크(한신평)
유형별 PF보증의 사업성 리스크(한신평)

한신평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이후 약 1년간은 금융경색으로 인한 PF 유동화증권 차환 리스크가 주요 이슈였다면, 작년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와 정부의 PF구조조정 추진을 기점으로는 PF보증 현장의 사업성 저하에 따른 부실 우려가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이후 유동화시장을 포함한 금융시장 전반의 경색 상황에서 공적 PF대출 보증 확대, 펀드를 통한 유동성 공급 등을 통해 PF시장의 연착륙을 유도, 이 과정에서 많은 PF사업장들이 만기 연장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 결과 분양시장은 계속 침체되는 상황에서 PF대출 규모는 오히려 계속 증가, PF 부실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확산되면서 정부는 지금은 부동산 PF에 대한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PF현장의 사업성이 저하될 경우 다양한 경로로 PF우발채무가 정식 부채로 현실화될 수 있다. 착공 사업장은 분양실적 저조로 관련 PF차입금 상환재원이 부족할 경우 만기시점에 PF보증을 제공한 건설사가 이를 대신 부담하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신평이 유효 등급을 보유한 건설업체들의 합산 PF보증 유형
한신평이 유효 등급을 보유한 건설업체들의 합산 PF보증 유형

특히 미착공사업장은 아직 분양을 진행하지 않았지만, 주택가격 하락이나 공사원가 및 금융비용 상승에 따른 사업성 저하로 착공이 지연되거나 본PF 투자자 모집에 실패, 시공사가 보증을 제공한 브릿지PF를 대신 물어주는(대위변제) 방식으로 건설사의 우발채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PF보증 위험의 핵심은 재건축-재개발같은 정비사업 보다 각종 도급사업 중 분양률이 부진한 착공현장과 지방 주택, 그리고 비주택 미착공사업장들이다. PF보증 리스크의 대부분은 본PF로 전환되지 못한 지방 미착공 도급사업장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방 아파트 뿐 아니라 분양이 부진한 물류센터,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한신평은 PF 리스크가 현실화된 태영건설을 제외한, 한신평 유효신용등급 보유 20개 건설사들의 2023년 말 PF보증은 모두 26.9조원으로, 22년 말 25.9조원보다 15.6%나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건설사들이 그동안 다양한 우발채무 감축노력을 벌였음에도 PF우발채무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이다.

PF보증 중 위험수준이 높은 미착공 도급사업장과 분양률 50% 미만의 착공 도급현장 관련 PF보증금액은 약 12조원으로, 전체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또 도급사업 PF보증 중 미착공 현장 비중은 69%에 달하며, 광역시를 포함한 지방 주택사업장과 비주택 사업장 관련 보증도 미착공현장의 70%를 상회하고 있다.

작년에 건설사들의 PF보증이 오히려 더 늘어난 것은 주로 분양경기 침체 때문이다. 2022년 하반기 이후 국내 주택 및 분양경기가 본격적인 침체기에 진입하고 예정 현장들의 착공, 본PF 전환 등이 지연됨에 따라 착공 전 현장에 대한 건설사들의 PF보증도 상당 부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또 금융기관들의 위험 회피기조로, 시공사인 건설사가 추가 PF보증을 제공하거나, 건설사가 기한 내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책임준공 약정이 PF보증으로 확대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한신평은 고금리, 실물경기 부진, 높아진 공사원가 및 분양가 등으로 위축된 수요와 확대된 입주물량 등을 감안할 때 분양시장이 2024년 내에도 큰폭으로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물류센터 책임준공 관련 우발채무 현실화 사례들(한신평)
물류센터 책임준공 관련 우발채무 현실화 사례들(한신평)

한신평은 대형 건설사와 대그룹 계열 건설사 등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기존 현금성자산과 그룹 지원 등에 기반한 자구노력 실행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비우호적인 금융시장 여건에도 유동성 대응이 상당 수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자금조달 여건이 보다 경색되는 스트레스 상황을 전제할 경우 A- ~ BBB- 등급의 2~3개 건설사는 현재까지 2024년 내에 발생할 수 있는 차입금 및 PF유동화증권 상환 등의 자금소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의 유동성과 자구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2~3개 건설사들의 사명은 밝히지 않았다.

특히 시공능력순위 20~50위권의 BBB급 중견 건설사들의 경우 유동성 압박이 단기적으로 추가 신용도 저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기업 계열에 속하지 않은 중견 이하 건설사들의 경우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기관의 지원 또는 회사채 등 직접 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건설사들의 PF보증 추이(한신평)
건설사들의 PF보증 추이(한신평)

만기도래 차입금과 PF우발채무 대비 기존 유동성과 신용보증기금 P-CBO, 산업은행 인수 사모사채 등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가 제한됨에 따라 보유 유동성이 점차 소진되는 양상이라고 한신평은 평가했다.

한신평은 저조한 분양경기가 지속돼 운전자금 및 PF우발채무 관련 자금소요가 장기화될 경우 내년 이후에는 A급 건설사들도 추가 자구계획이나 그룹 지원 방안이 요구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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