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만기 고금리 신종자본증권 3360억원 발행
- 만기 채무 상환과 운영 자금 용도
- 전기차 수요 둔화로 매출 급감, 부채비율 크게 상승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작년까지만 해도 잘 나갔던 이차전지 소재기업 에코프로비엠이 고금리의 사모 신종자본증권까지 대거 발행하며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의 지난 28일자 공시에 따르면 이번 신종자본증권의 총 발행량은 3360억원 규모로, 이 회사의 첫 신종자본증권 발행이다. 발행금리 및 조기상환 가능 기한 등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 발행한다. 만기는 모두 30년이지만 계속 만기 연장이 가능한 영구채이고, 청약 및 납입일은 모두 29일이다.
7-1회차 발행분 2440억원은 채무상환자금 2200억원과 운영자금 240억원 용도로 발행된다. 표면이자율은 연 6.281%. 7-2회차 발행분 920억원은 운영자금용이며, 표면이자율은 연 6.638%다.
같은 날 발행하면서 금리가 다른 것은 조기상환(콜옵션) 가능일자와 금리상향조정 일자 등 발행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7-1회차는 2년 후부터 에코프로비엠의 조기상환이 가능하고 조기상환을 하지 않으면 매년 금리가 조금씩 올라가는 금리상향조정(스텝업) 조건이 붙어 있다. 7-2회차는 3년 후부터 조기상환이 가능하고, 역시 조기상환을 하지 않을 경우 금리가 매년 조금씩 상향조정된다.
두 종류 모두 이자지급의 정지(유예)나 선택적 연기가 가능하다는 조건도 붙어 있다. 다른 신종자본증권처럼 증권을 인수한 사채권자가 어떤 경우에도 중도상환(풋옵션)을 요구할 수 없다는 조건도 두 가지 모두에 공통적으로 붙어 있다.
조기상환을 하지 않으면 매년 금리를 계속 올린다는 스텝업 조항은 향후 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조기상환을 않는다고 가혹한 금리상향 조건을 붙이면 해당 기업에게는 자본이라기보다 부채 성격이 강해질 수 밖에 없어 경우에 따라 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요즘 속속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신종자본증권도 고금리에다 스텝업 조항이 보통이 아니어서 에코프로비엠은 많은 다른 금융기관들처럼 2~3년 후 조기상환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때까지 상환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금리부담이 계속 심해진다. 이 신종자본증권을 사모 형태로 인수하는 쪽도 이런 점들을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신종자본증권을 인수하는 곳은 주로 증권사들이다. 한국투자증권이 892억원, NH투자증권 800억원, SK증권 100억원, 대신증권 100억원, 삼성증권 368억원 등이다. 나머지 1100억원은 투자조합이나 사모펀드로 보이는 3곳에서 인수했다.
신종자본증권은 상대적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잘만 발행조건을 붙이면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자본적정성조건(BIS자기자본비율)을 준수해야하는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자주 발행하는 것이다.
그런 의무 조건이 없는 일반기업들은 굳이 고금리에 까다로운 스텝업 조항 등까지 감수해가면서까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이유가 별로 없다. 자금은 급한데 부채비율 등 때문에 금융기관 차입 등을 더 하기가 곤란한 기업들이 간혹 활용한다.
작년까지 한창 좋았을 때 에코프로비엠이라면 당연히 이런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 에코프로비엠이 최근 몇 년간 활용한 자금조달수단으로는 금융기관 차입과 회사채 말고 작년 7월에 발행한 전환사채(CB) 4400억원이 유일했다.
올 3월 두 차례 발행한 공모 회사채 1530억원의 경우 발행금리는 각각 4.334%와 4.491%였다. 이번에도 이 금리로 회사채를 또 발행하거나 차입을 하면 될텐데, 왜 굳이 고금리에 스텝업조항까지 감수하면서, 공모도 아닌 사모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을까?
투자자금 등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데 영업실적은 악화 일로이고, 금융기관 차입이나 회사채 발행을 계속 늘리기에는 여러모로 드러나지 않은 부담이 상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른 대부분의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그렇지만 에코프로비엠도 올들어 영업실적 악화 속도부터가 너무 가파르다. 올 상반기 연결 매출은 1조7799억원으로, 작년 상반기 3조9172억원에 비해 무려 55%나 격감했다.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적인 전기차 수요 둔화로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영업이익은 작년 상반기 2220억원에서 올 상반기 106억원, 같은 기간 당기순익도 1628억원에서 20억원으로, 감소폭이 더 컸다. 겨우 적자를 모면했다고 보면 된다.
재무상태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2020년 말 1932억원, 21년 말 5504억원, 22년 말 9452억원이었던 총차입금은 작년 말 1조8205억원, 지난 6월 말 2조325억원 등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2차전지 소재기업 특성 상 끊임없이 공장신설 자금과 운전자금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년 말 71%에 불과하던 부채비율은 6월 말 161%, 같은 기간 순차입금의존도는 17.2%에서 37.7%로 각각 크게 높아졌다. 금융비용이 크게 늘면서 EBITDA(상각전영업이익)/금융비용은 21년 말까지만해도 35.3배에 달하던 것이 작년말에는 2.9배, 지난 6월 말에는 1.3배로 각각 크게 하락했다.
순차입금/EBITDA는 22년말 1.3배, 작년 말 5.3배이던 것이 지난 6월 말 12.6배로 특히 올들어 급격히 높아졌다. 계속되는 투자 지출로 잉여현금흐름은 21년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서 작년에는 -7856억원, 올 상반기 -3033억원 등으로 현금흐름 부족도 심화되고 있다.
영업실적은 크게 악화하고 현금은 이렇게 잘 돌지 않자 다른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처럼 에코프로비엠도 최근들어 투자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총투자금 4732억원을 들여 당초 올해 말까지 완료할 예정이었던 국내(포항) CAM9 신증설 투자를 2026년 말까지로 2년 연장한 것이 최근의 대표적 사례다.
이번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이런 시설투자자금이라기보다 만기가 돌아오는 기존 채무 상환자금이나 운전자금 용도로 발행되는 것이다. 설비투자도 설비투자지만 벌어 들이는 순익이 줄고 현금이 돌지 않다보니 운전자금이나 채무상환용 자금도 긴급히 필요한 상황이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너무 잘 나갔던 에코프로비엠이 이런 자금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전기차 수요가 다시 훨훨 살아나는 것 뿐일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전망은 그렇게 썩 밝지만은 않다.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에도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20%를 상회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나, 국내 기업들이 주력하는 북미 시장 성장률은 11%, 유럽은 1%에 불과하다. 주력 시장의 낮은 성장성을 감안하면 국내 2차전지 기업 실적은 단기적으로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엘지에너지솔루션 등 셀 기업은 글로벌 생산지 확대 경험을 갖추고 있고 IRA 세액공제를 통해 수익성 보완이 가능해 차입금 증가에도 현 수준의 채무 상환 능력을 유지할 전망이다. 하지만 에코프로비엠 같은 소재 기업은 수익성 개선 여력이 제한적인 가운데 차입 규모가 계속 늘어 재무구조 저하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나신평은 우려했다.
포스코퓨처엠 등 다른 소재기업들은 대부분 결정적일 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그룹 소속인 반면 에코프로비엠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과 미국 대선 결과 등도 변수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미국의 전기차 정책은 더 후퇴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공모가 아닌 사모로 서두른 것도 이런 배경들이 종합 작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공모로 했다가 혹시 수요예측에서 미달이라도 생기면 에코프로비엠의 평판이나 신용도가 더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발행으로 필요자금 조달이 끝이라면 다행이나 계속 자금이 들어가야 한다면 앞으로 어떤 자금조달 포트폴리오를 동원할지도 관심거리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대그룹 소속도 아닌 에코프로비엠으로선 전기차 수요가 조속히 살아나지 않는다면 큰 부담”이라며 “당분간 차입이나 회사채 등을 적절히 섞어가며 부채비율이 크게 치솟지 않도록 근근이 관리해나가는 길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