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0억대 금융사고, 부실관리·내부통제 미비
- 고정이하자산비율 업계 최고 수준, 부실 자산 급증
- 과거, 환매중단 사모펀드로 인한 손실 배상 ‘악몽’ 재현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과거 환매중단 사모펀드 배상액이 전 은행과 증권사 통틀어 가장 많았던 신한투자증권에 최근 또 대형 금융사고가 난 가운데 이 회사의 각종 부실도 대형 증권사들 중 가장 많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각종 대출 중 사실상 부실자산 또는 부실채권이랄 수 있는 고정이하자산비율이 전국 60개 증권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은 신한투자증권이었다.
‘고정이하’는 자산을 회수 가능성이나 부실 정도에 따라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할 때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 단계에 있는 자산을 말한다. 연체 3개월 이상으로, 회수가 크게 어려워지거나 사실상 회수불능 상태에 빠진 채권들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신한증권의 각종 대출 잔액 2조3062억원 중 고정이하로 분류된 금액은 전체 대출의 24.07%인 5551억원에 달했다. 1년 전 17.5%에 비해 7%포인트 가까이 급등했다.
물론 다른 대형 증권사인 대신증권의 고정이하대출자산비율도 100%로, 신한증권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대신증권 전체 대출금 규모는 363억원 밖에 되지 않는다. 적어도 조 단위 이상 대규모 대출을 취급하는 증권사들 중에서는 신한증권의 고정이하비율이 단연 으뜸이다.
신한증권의 고정이하 대출 5551억원도 전 증권사들 중 가장 큰 금액이다. 고정이하 대출이 신한증권 다음으로 많은 곳은 메리츠증권(2158억원, 고정이하비율 5.29%), 미래에셋증권(1986억원, 10.4%), 한국투자증권(1780억원, 3.8%), NH투자증권(1709억원, 5.08%), 하나증권(1507억원, 13.7%) 순이다.
매입대출채권의 부실도 신한증권이 업계 최대 규모다. 지난 6월 말 신한증권의 매입대출채권 잔액 3400억원의 56%인 1915억원이 고정이하로 분류돼 있다. 신한 다음으로 매입대출채권 고정이하가 많은 곳은 유진투자증권(999억원, 고정이하비율 100%), IBK투자증권(327억원, 100%), 현대차증권(238억원, 100%) 등의 순이다.
각종 대출채권에서 이같이 부실이 많이 발생하면서 신한증권의 건전성분류대상 전 자산의 고정이하비율은 지난 6월 말 6.24%로, 1년 전 3.93%에 비해 크게 높아지면서 대형 증권사들 중에서는 삼성증권 다음으로 높다.
지난 6월 말 삼성증권의 이 비율은 6.45%다. 1년 전 삼성증권의 이 비율은 1.89%에 그쳤으나 사모사채 투자가 갑자기 크게 늘면서 부실이 많이 생기는 바람에 이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다른 대형 증권사들의 지난 6월말 전체 자산의 고정이하비율을 보면 대신증권이 3.8%, 메리츠증권 3.43%, 한국투자증권 3.39%, 하나증권 2.44%, 미래에셋증권 1.52%, NH증권 1.47%, KB증권 0.99% 등으로 모두 5%가 아직 안된다.
대출채권을 비롯한 각종 부실 자산이 크게 늘다보니 신한증권이 새로 쌓은 대손충당금 신규전입액(대출채권 대손상각비)은 작년 상반기 148억원에서 올 상반기 1007억원으로 7배 가까이 급증했다.
대손상각비 규모는 아이엠(옛 하이투자)증권의 1484억원에 이어 전체 60개 증권사들 중에서 두 번째로 크다. 하이투자증권은 올 상반기 가장 많은 부동산PF 관련 부실과 영업적자를 냈던 증권사다.
채무보증이 아닌 다른 분야의 갚아야할 부채들인 기타충당부채도 작년 상반기 1653억원에서 올 상반기 3022억원으로 급증하며 신한증권이 업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과거 환매중단 펀드 사고 등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부동산PF 현장 등과 주로 관련이 많은 채무보증 충당부채는 작년 상반기 1257억원에서 올 상반기 810억원으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절대 금액 자체는 크다.
이처럼 새로 쌓는 충당금과 충당부채가 늘어날수록 당기순익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올 상반기 신한증권의 당기순이익은 2106억원으로, 작년 상반기 2500억원보다 15.7%나 감소했다. 대형 증권사들 중 올 상반기 당기순익이 실질적으로 줄어든 곳은 신한증권 밖에 없다.
작년 상반기 흑자가 118억원에 그쳤던 하나증권 같은 경우 올 상반기에는 흑자가 150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신한증권의 흑자폭 감소는 부동산PF 위축으로 채무보증수수료가 작년 상반기 371억원에서 올 상반기 239억원으로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부실 급증 등으로 충당금과 충당부채를 과다하게 쌓은 것이 아무래도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발생한 금융사고는 신한투자증권의 올해 영업실적을 더욱 까먹는 요인이 될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지난 11일 신한증권이 홈페이지에 해당 내용을 공시하면서 알려졌다. 공시를 통해 신한증권은 ETF LP 목적에서 벗어난 장내 선물 매매로 13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상장지수펀드(ETF)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 호가를 대는 유동성공급자(LP) 업무를 하다가 이런 손실을 냈다는 것이다.
일선 트레이더가 이런 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지며, 1300억원도 추정 수치일 뿐 확정된 규모가 아니라고 한다. 증시 상황에 따라 손해액은 줄거나 더 커질 수 있다. 지난 14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금융감독원에 이번 사고를 철저히 검사토록 하고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번 손실은 투자자가 맡긴 돈이 아니라 증권사 자기자본을 운용하다 난 손실이므로 투자자 배상 책임이나 충당금 또는 충당부채 설정은 필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평가 및 처분손실 또는 파생상품 관련손실로 장부상 처리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올 하반기 영업실적에 큰 부담요인이 새로 생긴 것은 틀림없다.
신한투자증권은 몇 년전 크게 사회문제화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인 환매중단 사모펀드 사태때도 가장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던 증권사들 중 하나다. 전 은행과 증권사들을 통틀어 피해배상액부터가 가장 컸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가 지난 2월 발표한 ‘환매중단 사모펀드로 인한 금융회사의 손실과 주주들의 손해회복방안’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3년 8월까지 5년 동안 환매중단 된 사모펀드의 수는 모두 16개, 투자자 수로는 12782명, 펀드 설정액은 총 4.8조원으로 확인되었다.
환매중단된 사모펀드를 판매한 금융회사는 총 29개사로, 은행이 9개, 증권사가 20개였다. 지금까지 배상이 이루어진 규모는 모두 2.43조원(설정액의 50.46%)이다.
각종 환매중단 사모펀드 판매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신한투자증권(1.25조원)이고, 다음은 신한은행(5345억원)이었다. 신한금융지주 두 자회사들의 판매액이 1.79조원으로, 전체의 37%에 달했다.
총 배상액이 가장 많은 순서 역시 신한투자증권(6315억원), 신한은행(3303억원), 하나은행(3011억원), NH투자증권(2937억원), 우리은행(2602억원) 순이다.
신한증권은 이 배상 등을 위해 매년 하반기나 연말 쯤 충당부채를 새로 쌓다보니 전체 영업실적에 크게 구멍을 냈다. 영업에선 큰 흑자를 냈는데도 충당부채가 포함된 영업외비용이 급증, 당기순익이 크게 줄거나 분기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신한증권이 판매하다 환매중단 손실이 크게 난 대표적인 펀드로는 라임펀드와 젠투펀드, 독일헤리티지펀드 등이 있다. 아직도 관련 제재와 배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어서 총 배상규모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신한증권을 비롯한 신한금융 계열사들의 펀드 판매 연루가 유달리 많았던 것은 당시 금융지주 최고 경영진의 공격적인 성향과도 관련성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2022년 말 3연임이 유력해 보였던 조용병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현 은행연합회장)이 갑자기 중도하차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는게 당시 많은 정부 및 금융계 관계자들의 추정이었다.
실제 2021년 8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신한금융투자(현 신한투자증권) 지부는 천문학적인 금융사고들의 원인이 신한금융지주와 낙하산인사 때문이라면서 조용병 당시 회장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적도 있다.
회견에서 노조는 2017년 3월 신한금융지주가 증권업 경험이 거의 없는, 은행 출신을 신한금투 사장으로 낙하산 인사를 단행했고, 이 사장이 ‘사모상품의 밤’ 행사까지 열어가며 신한금투를 사모상품 판매 1위 증권사로 도약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금융지주의 WM그룹장(지주 부사장)이 주문형 사모상품 판매를 ‘핵심경영전략’에 반영, 사모상품 판매를 강하게 밀어부친 것이 타사 대비 천문학적 규모의 금융상품사고 발생의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실제 CEO를 만나 상품사고 해결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면 ‘상품사고 해결은 (금융지주)전략기획그룹장이 총괄하고 있으니 그 사람과 이야기하라’는 대답뿐이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노조 주장이라 참작해 들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유달리 신한투자증권에서 펀드사고 가 많이 났고, 손실도 컸던 것은 금융지주 차원의 판매 독려가 한 원인이었던게 사실로 보인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이번 금융사고도 이런 분위기가 아직도 일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는데다 일개 트레이더가 저지른 일을 회사가 두달 지나서야 알게 될 정도로 신한증권의 내부통제시스템이 의외로 허술했던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많은 관계자들도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증권이 이번 기회에 내부통제시스템과 영업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하지 않는 한 영업실적을 아무리 올려도 각종 사고로 까먹는 일이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금융소비자들의 신뢰도 계속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