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9월 영업적자 1,013억원, 전국 79개 저축은행 중 1위
- 1년 사이 예금·대출·자산이 44~46% 감소…전국 최악 감소율
- 부실채권 정리로 일부 지표 개선. 실물경기 회복이 회생의 변수

페퍼저축은행 로고와 장 매튜 하돈 대표이사
페퍼저축은행 로고와 장 매튜 하돈 대표이사

[편집자주] 기업의 위험징후를 사전에 알아내거나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않다면 호재와 악재를 구분하기 조차 어렵다. 일부 뉴스는 숫자에 매몰돼 분칠되며 시장 정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치다. ‘현미경’ 코너는 기업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특정 동선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되짚어 본다.

뉴스웨이브 = 이태희 기자

전국 79개 저축은행들 중 자산순위 7위인 페퍼저축은행의 올 1~9월 영업적자가 1천억원을 넘어서고, 1년 전 대비 예금-대출-자산 감소폭도 여전히 44~46%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적자폭이나 예금-대출 감소폭 모두 저축은행들 중 최대 규모다. 다만 올 하반기들어 부실자산 정리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 저축은행의 부실채권비율 등이 많이 낮아지고, 영업적자 확대폭도 둔화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18일 저축은행중앙회 소비자포털 경영공시자료에 따르면 페퍼저축은행의 올 1~9월 영업손익은 1013억원 적자로, 전년동기 893억원 적자보다 적자규모가 13.4% 더 늘어났다. 당기손익도 작년 1~9월 677억원 적자에서 올 1~9월에는 762억원 적자로, 적자가 더 증가했다.

페퍼저축은행의 올 1~9월 영업적자 규모는 전국 79개 저축은행들 중 최대 규모다. 같은 기간 페퍼 다음으로 영업적자가 큰 저축은행들은 자산순위 9위인 상상인(-795억원), 바로(-619억원), 우리금융지주 자회사인 우리금융(-537억원), 상상인플러스(-433억원), 부산 소재 소형저축은행인 솔브레인(-358억원), IBK기업은행 자회사인 IBK(-347억원) 저축은행 등의 순이다.

페퍼저축은행 손익계산서중 대손상각비와 영업이익부문(()는 적자 또는 마이너스)
페퍼저축은행 손익계산서중 대손상각비와 영업이익부문(()는 적자 또는 마이너스)

키움예스(-287억원), 예가람(-282억원), HB(-249억원), 파주 안국(-247억원), 대구 MS(-243억원), 부산 동원제일(-214억원), 부산 고려(-213억원),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인 하나(-201억원) 저축은행 등도 영업적자 규모가 200억원을 넘어섰다.

이들 중 HB저축은행만 제외하고 모두 작년 1~9월보다 적자규모가 더 늘거나 적자 전환했다.

올 1~9월 전년동기보다 영업적자 규모가 더 늘거나 적자전환한 저축은행은 모두 31곳에 달한다. 적자는 아직 아니지만 영업흑자 규모가 줄어든 곳도 15곳에 이른다. 79개 저축은행들 중 모두 46곳의 영업실적이 전년동기보다 더 나빠졌다고 볼 수 있다.

올 상반기 영업실적이 작년 상반기보다 더 나빠졌던 저축은행들은 모두 62곳이었다. 올 하반기로 들어오면서 영업실적이 조금씩이나마 회복되는 저축은행의 숫자가 점점 더 늘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의한 부실채권 정리 가속화, 전세계적인 금리 인하 분위기 등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대출채권 매각 관련, 페퍼저축은행의 설명 공시
대출채권 매각 관련, 페퍼저축은행의 설명 공시

페퍼저축은행도 올들어 부실채권의 매각-상각 등을 크게 늘리며 계속 오르기만 하던 부실채권 비율을 올 3분기 들어 많이 줄였다.

올 1~9월 대출채권 매각은 4776억원으로, 전년동기 1907억원의 2배가 넘었다. 그 덕분에 부실채권이랄 수 있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작년 말 10.13%, 지난 6월 말 19.15%에서 지난 9월 말에는 13.99%로 줄었다. 거의 2년여만에 부실채권비율 줄이기에 성공했다.

작년 6월 말 6.05%에서 지난 6월 말 13.07% 등으로 계속 오르기만 하던 연체대출비율도 지난 9월 말 9.17%로 많이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손해를 보고서라도 부실성 대출채권을 서둘러 팔다보니 입은 대출채권처분손실도 올 1~9월 925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대출채권처분이익 187억원을 크게 앞질렀다.

부실성 대출채권들을 많이 줄이면 대출이자 수익이 줄어 원가부담이 큰 예금도 같이 줄일 수 밖에 없다. 대출자산 감소 만큼 전체자산도 같이 줄어든다.

페퍼저축은행의 대출채권 잔액은 작년 9월 말 4.13조원에서 지난 9월 말 2.28조원으로, 1년 사이에 무려 44.8%나 줄었다. 각종 예금(예수부채)잔액도 같은 기간 5.12조원에서 2.76조원으로, 46.1% 감소했다.

예금 감소폭이 약간 더 크다. 같은 기간 자산총액도 5.78조원에서 3.19조원으로 44.8% 감소했다. 전국 79개 저축은행들 대다수가 고금리 지속과 건설 및 실물경기 악화 등에 따른 영업환경 악화로, 작년부터 부실성 대출과 예금을 같이 많이 줄이고 있기는 하지만 페퍼저축은행 만큼 감소폭이 큰 곳은 없다. 그만큼 페퍼의 부실자산들이 그동안 많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페퍼의 작년 상반기 대비 올 상반기 예금 및 대출자산 감소율은 40%안팎씩이었다. 부실성 대출 및 예금 줄이기는 올 3분기 들어 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페퍼저축은행 대출채권의 산업별 분류
페퍼저축은행 대출채권의 산업별 분류

반면 대손충당금 신규전입액(대손상각비)은 올 1~9월 780억원으로, 전년동기 1411억원에 비해 무려 44.7%나 급감했다. 대손충당금은 빌려준 돈에서 부실요인이 발생할 때 회수가 어려울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돈(비용)을 말한다.

부실성이 클수록 더 많이 쌓아야하며, 그만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충당금 신규적립액 만큼 순이익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작년과 올해 많은 저축은행들의 영업실적이 크게 악화된 최대 요인은 바로 이 대손충당금이었다.

페퍼의 대손충당금 신규전입액이 전년동기에 비해 올들어 크게 줄어든 것은 그만큼 부실대출들을 작년부터 미리 많이 정리해 올들어서는 신규부실 발생이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도 영업적자가 올들어 더 커진 것은 영업수익 감소폭에 비해 판매관리비 등 영업비용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이자수익 등 페퍼저축은행의 영업수익은 올 1~9월 2469억원으로, 전년동기 4047억원에 비해 39%나 줄었다.

반면 예금이자나 대손상각비, 판매관리비 등 영업비용은 같은 기간 29.5% 밖에 감소하지 않았다. 대손상각비(-45%)나 이자비용(-45%)은 많이 줄었는데도 고정비용 성격이 강한 인건비 등 판관비가 같은 기간 18.8% 밖에 줄지 않아 영업비용이 영업수익보다 덜 줄었던 것이다.

페퍼저축은행의 대출채권 대손충당금 변동내역
페퍼저축은행의 대출채권 대손충당금 변동내역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작년 711억원에 달했던 페퍼저축은행의 중간배당 및 연차배당 지급액이 올들어서는 아직 0다. 경영진보상(급여및상여)도 작년 1~9월 103억원에서 올 1~9월 57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엄청난 사업축소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회사라면 당연한 일이다.

2021년 이후 2년간 없었던 주주배정 유상증자도 작년과 올해 이미 각각 200억원씩 단행했다. 대규모 적자 지속으로 배당 재원 등이 모자라자 작년에는 2350억원의 자본잉여금을 이익잉여금으로 편입하기도 했다.

페퍼저축은행의 자본변동표
페퍼저축은행의 자본변동표

페퍼저축은행은 호주 페퍼그룹을 거쳐 현재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인 KKR그룹이 최대주주인 저축은행이다. 2013년 저축은행사태로 부실화된 국내 저축은행 2개를 인수하면서 한국에 진출한 이후 2022년 말까지 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 공로로, 한국계 미국이민 1.5세대인 매튜 하돈 장(한국명 장하돈)대표는 첫 한국 진출 때부터 11년째 계속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한국 진출 직후인 2015년 말 6990억원이던 페퍼저축은행의 자산 총액은 2016년 말 1조3064억원으로 갑자기 2배 가까이 점프했다. 이후 2022년 말까지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지속했다.

한국 진출 9년 만에 자산은 무려 21배 이상 폭증했다. 소형 저축은행에서 한때 자산 기준 저축은행업계 3위까지 뛰어 올랐다. 하지만 부실이 급증하기 시작한 작년 6위로 떨어진 후 현재는 7위다.

2022년까지 페퍼의 초고속성장 배경에는 ‘데이터분석’과 ‘첨단과학경영’을 앞세우는 남다른 영업방식이 있었다. 저금리시대 때 대부분의 저축은행들이 부실만 안생기면 고수익이 보장되는 부동산PF대출 등 부동산 대출영업에 사실상 올인할 때 페퍼는 오히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등 개인대출 비중을 더 늘렸다.

장 대표와 페퍼는 초기부터 틈새 대출시장을 적극 공략했다고 한다. 대체로 은행권이 신용등급 1~3등급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기존 저축은행이 7~9등급에 중점을 뒀다면 폐퍼는 4~6등급을 주 타깃으로 삼았다.

경기도 분당 페퍼저축은행 본사
경기도 분당 페퍼저축은행 본사

데이터기반 신용평가 모델을 갖추고 차별화된 예적금, 중금리 개인신용대출을 중심으로 주택담보·사업자·소상공인·자동차 대출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 자체 모바일용 앱을 이용, 소액대출을 10분 이내에 빠르게 받을 수 있게 하고 수시입출금이 되면서도 연 2%금리를 제공하는 모바일 전용상품도 출시했다.

그러나 고금리 시대로 접어들고, 그 여파로 실물경기와 부동산경기가 극도의 침체에 빠지면서 페퍼의 틈새대출 영업신화는 작년부터 크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영세민 대출 등에서 부실이 급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퍼 측은 ‘우리가 작년부터 상대적으로 큰 적자가 났지만 이는 소상공인이나 영세민 등 대출에서 문제가 많이 생긴 때문이지 요즘 문제가 크게 되고 있는 부동산PF대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어 실물경기만 회복되면 회복속도가 훨씬 더 빠를 것’이라고 그동안 언론 등에 설명해왔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영업적자가 계속 늘고 있기는 하지만 페퍼가 그동안 부실정리에 대단히 적극적이었고, 그 결과로 올 하반기부터는 부실채권비율 등 상당수 지표들이 차츰 안정세를 찾고있는건 사실”이라면서도 “실물경기가 과연 언제 본격회복될수 있을지가 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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